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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 독일 문화 이야기

독일어를 배운 후 달라진 나의 영어.

by kimiling 2019. 9. 17.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영문서적을 자주 읽었었다. 서점을 가도 영문서적 코너로 가장 먼저 향하곤 했다. 서점에 찾아간 어느 날 우연히 영문법 관련 책을 마주하게 됐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흐릿하게 기억이 나지만, 책의 제목은 대략 이랬다. "외국인이 자주 하는 영어 실수 100가지." 혹은 "전 세계인들이 많이 틀리는 영어 실수 100가지" 정확한 책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몇 장을 읽지 않고 책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왜 몇 장 밖에 읽지 않았냐고? 이런 기초적인 문법 실수를 누가 저지르지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였다. 한국인이 읽기에는 공감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고 할까나.

10년이 지난 지금, 독일어를 함께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 책의 내용이 문뜩 떠올랐다. 책의 저자가 언급했던 영문법 실수를 나는 매일같이 저지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명사의 첫 스펠링을 명사로 쓴다든지, 항상 대문자로 써야하는 'I'를 소문자로 쓰는 것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런 건 정말 사소한 실수고,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나는 매일같이 브로큰잉글리쉬/댕글리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어를 배운 후, 달라진 나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영어습관은 다음과 같다. 조금 덧붙이자면,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건 4년 전인 2015년부터이며, 어학 코스를 다닐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영어 공부 횟수가 줄면서 생긴 문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숫자세기.

영어로 숫자를 읽어야 할 때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문과 출신답게 원래 숫자에 약한 편이기는 했는데, 독일어를 배운 후엔 더 문제가 됐다. 이제는 글로 한번 써 본 후에 읽어야 할 정도다. 무슨 혼란이 있냐면, 독일에서는 숫자를 반대로 읽는다. 25를 예를 들어보면, 한국어로는 20 이십-5 오, 영어로도 20 Twenty-5 five로 읽는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5 fünf 그리고 und 20 zwanzig으로 읽는다. 이렇게 읽는 방식을 알게 되고 적응이 된 이후부터는 영어로 읽을 때도 거꾸로 읽을 때도 있고, 영어로 숫자를 들으면 꺼꾸로 잘못 생각을 할 때도 많다.

 

#소문자 사용.

영어의 규칙 중 나를 지칭하는 'I'는 무조건 대문자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반면 독일어에서는 나를 지칭하는 단어 'ich'는 첫 문장이 아닐 경우에는 소문자로 사용해야 한다. 영어적 습관이 있어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 매번 Ich로 표기해서 강사님이 고쳐주곤 했다. 근데 지금은 영어로 문장을 쓸 때, 대문자로 변환 키인 shift 누르는 게 귀찮은 건지 소문자로 i를 적을 때가 종종 있다. 

 

#명사 대문자 표기.

이건 요즘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실수 중 하나이다. 명사의 첫 스펠링을 대문자로 표기하는 것. 영어에서는 문장 중간에 나오는 일반명사는 소문자로 표기하는 게 옳다. 하지만, 독일어에서는 모든 명사의 첫 스펠링을 대문자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됐는지 영어 문장을 쓸 때 나도 모르게 독일어 식으로 표기하곤 한다.

사실, 이 내용이 바로 서론에서 언급했던 책에서 봤던 내용이었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 중 영어문법만 배웠던 나로서는 누가 이런 실수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었는데,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됐다. 아무래도 독일인들이 영어 문장에서 자주 틀리는 내용이기에, 책에도 적혀있지 않았나 싶다. 

 

#단어 잘못사용.

독일어 단어가 익숙해지면서, 영단어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독일어로 숫자는 영어와 발음도 표기법도 많이 비슷하다. 영문으로는 Number(넘버), 독일어로는 Nummer(누머)인데, 이렇게 비슷한 단어들은 영어로 대화하는 중간에 종종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단어는 'Handy(핸디)'이지 않을까 싶다. 콩글리쉬인 '핸드폰'과 같은 맥락으로, Handy도 영어 같지만 댕글리쉬인 단어이다.

 

#독일식 발음과 억양. 

독일인들과 영어를 하면서 변화한 게 있다면, 나의 영어 억양일 것이다. 보통의 한국인처럼 미국식 영어를 배웠고, 캐나다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어서 미국식 혹은 캐나다식의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작년에 한국 회사에서 영어로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미팅이 종료된 후, 한국인 동료가 오더니 영어 발음이 독특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독일인 직원들과 비슷하게 들렸다고 언급했다.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많이 노출된 소리에 적응이 되면서 말투가 점점 변하는가 보다.

 

#is 와 ist

is는 영어의 be동사이고, ist는 독일어의 sein동사(be동사와 같은 기능)이다. 스펠링이 비슷한 탓이 종종 틀리곤 한다. 컴퓨터로 영어 문장을 적을 때 t를 추가로 더 적는다. 키보드를 잘못 칠 때마다 바로바로 인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자동적으로 ist를 먼저 쓴 후 t를 삭제한다. 역시 습관이 무섭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면,
그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적은 것처럼
독일어에 익숙해질수록
영어실력이 계속 저하되더라고요.

전공자의 마음인 건지 독일어 실력을 키우기보다,
영어실력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돼요.

▶ 작성자 : 독일사는 Kimmmi 키미 ◀
사진 :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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